[잡담] 지난 3개월간 있었던 일 part.1
부제 : 지난 3개월간 있었던 일 part.2.... 가 되겠군요.

제목 그대로... 저의 집안 제일 큰 어른이시자..
어머니와 함께 어린 시절 저를 길러주신.. 저의 외할머니께서 101세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봄에 어머니께서 손을 다치시는 바람에 마지막 한 해는 집에서 계시질 못했고. 이모댁에서 지내셨지요.
지난 아버지 급환 이후 안정기를 지나 건강이 많이 좋아지신 한달 즈음해서..
갑자기 할머니께서 식사도 못하시고. 그리고 감기와 기침을 다시 앓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후 종종 의식을 잃기 까지 하시고... 결국에는 병원에 입원.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른 어른들은 모두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하지만. 저는, 지난 13년간의 경험이랄까.
아니면 쓸대없는 과신이랄까. 할머니께서도 이번에도 쾌차 하시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2주간 할머니의 병세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었지요.
하지만 마지막 뵈러 갔던 금요일. 잠깐 의식이 돌아오셨습니다.
뭔가 많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만....
노인병원으로 따지면 집중치료실 같은 곳에서 그중에도 격리병동에 계셨던지라.
더 많이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할 상황은 아니었지요. 그리고 계속 석션을 받는 상황인지라.
목도 많이 상하셨고. 눈도 보이지 않으셨고... 하지만 찾아간 우리가족 모두에게 할머니께서는..
손을 잡아 드릴때 마다 산소호흡기를 쓰셔서 발성도 잘 안되는 목소리로
고맙다.
라는 말씀만 연신 하셨지요. 마치 마지막이라도 맞이 하신것 처럼...
저는 그때까지도.... 할머니가 씻은듯이 다 나아서
제가 다시 집으로 모시고 갈거란 생각에 추호도 의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5시쯤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급환 덕분에 아침잠에 조금 예민해진지라. 바로 일어났고... 우리 식구 모두 짐작을 했습니다.
차를 몰고 가면서도 눈물 참기 참 어렵더군요. 가족들 모르게 훌쩍거리려니 참...
그리고 할머니께선... 참 평안한 모습으로 가셨습니다.
임종까진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만..... 참으로 편안하게 눈을 감고 계셔서..
잠들어계신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마지막 지켜봐주신 요양사 선생님과 이모도 괴롭지 않게 편하게 가신거라 하더군요.
하지만... 선고 나오고 진단서 끊고... 가족들에게 연락하고.... 예 참 많이 울게 되더군요.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어린시절을 할머니와 함께 보낸지라.
더 정든것이 많아서 그런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달에 한번 정도는 꾸준히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생각도 들고. (좀 들쭉날쭉했지요.)
못해드린것, 해드릴수 없었던것. 그런것들이 생각나고....
창문에 매미 모형 붙여 놓고... 옆에 숨어서 맴맴 소리 내던것도 기억나고....
1912년생... 그야말로 까마득한 100년이지요..
그 모질고 험한 시절 다 겪고 나오신거로 따지면 뭐 한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만..
특히 못배우고 무식하다는걸.... 평생 한으로 생각하셨지요.
다른 오빠들과 언니는 그 시절에 동경제대와 와세다를 보냈다는걸 생각하면 더...
뭐.... 그 오라버니는 공부를 너무 하신탓인지 월북도 하셔서
할머니쪽 집안 원자분해도 시키셨습니다만.. -_-:
그것 빼더라도 해주신 이야기들 되새겨보면... 그리 평탄한 삶도 아니셨어요.
일찍돌아가신 어머니에. 일본에서의 삶에... 일찍 보내버린 아이에.. 바람피우는 영감에...
전쟁으로 끌려나간 친구에, 칼차고 사람 배는 순사에... 6.25에 군정에...
기억과 정신이 온전할 적에는 제가 어렸던 탓에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지는 못했습니다만..
나이가 들어서 곁에 계실적엔 또 치매가 생기셨던지라... -_-:
그래도 그냥 '대한민국 근대사'죠. 뭐...
그런 저런것들 다 생각하니 염할때도... 결국 솟는 눈물을 참을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얼굴도 표정도 그대로인데.... 그냥 벌떡 일어나실것 같은데...
묶는거 싫어하셨으니... 안묶으면 안되냐... 하는 이야기도 해보았습니다만.
그럴수는 없다 하더군요.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습니다.
4남 2녀 였던지라..... 장례식장은 참 떠들석 했습니다.
게다가 사촌들 지인들까지 먼길 찾아와주니...
떠들석하고 잔치같은 분위기 참 좋아하셨는데...
화환도 120개씩이나 들어온지라 치우느라 죽을맛이었다는것 빼곤... OTL
정말 비는 사람이 없는 축제같았습니다. 뭐 저야 그래도
감히 누가 호상 운운이 입에 나올때마다 째려볼정도로 슬펐지만..
요즘은 그리고 야밤에 손님은 잘 안받더군요. 문상객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나. 풍습도 많이 바뀐듯.
거기에 슬픔에 젖어서 이런 저런 일도 잘 못하던 저와 달리..
사촌 형제들은 차분하게 그리고 보기에도 든든하게 일도 잘하고 하는것이 내심 부러웠습니다.
슬프기는 다들 매 한가지 였건만....
그리고 발인날 아침..
저는 몸이 불편하신데도 내리 3일 빈소 지키신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 들어가야 했던지라.
결국 할머니 장지 가시는것은 볼 수 없었습니다.
전에 할머니 모시고 석촌 호수 돌러 갈적에 길고 하얀 리무진을 보셔서...
그런 차를 타고 싶다 하셨던 말씀을 하셨는데...
색은 검정이지만..... 장지까지는 리무진으로 모시더군요.
...... 좀 더 돈 잘 버는 손자 두셨음 리무진으로 모시고 다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못난 생각도 들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듣지 말고 렌트라도 할 걸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것 없이.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싶고...
마지막 가는 길에는 눈물 보이는거 아니라는데 또 한번 곡을 했군요.
그렇게 할머니는 우리 가족의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돌아가시고 나서 하나 둘 느끼는 겁니다만..
나이가 들어 우리가 할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생각을 하지요. 다들.
하지만... 저도 마음속 깊은곳에선 뭔지 모를 부분을 '할머니께 의지'하고 살았던것 같습니다.
치매가 들어도, 못걸어 다녀도, 저 못알아봐도.
그냥 살아 계셔 주시는것만으로도...
마음속 한구석 어딘가에선 안도하며 지내는... 뭐 그런것 말이지요.
세상에 당연한 것이 없는데도.. 영원한 수명따위 없는데도.. 말입니다.
새삼 다시 되새기게 해주시네요.
오래 모셨고 또 함께 지낸 시간이 길었으니..
나름 마음속에선... "해드릴 만큼 해드렸다." 하는 좀 건방진 생각도 한 적이 있습니다만.
맘속을 되짚어보니 어림도 없군요. 뭘 해드렸다는 건지....
뭐 증손자 정도는 제 사촌이 보여드렸으니.. 만족하셨겠지만..
제가 바로 사는것은 마지막까지 못보여 드렸으니... 이 역시 한으로 남는군요.
제 가슴속에...
그래도...
심심 찮음 강에 빠져 죽고 싶다고 하셔서.. (일종의 우울증이죠.)
바람한번 쐬시라고 모시고 나갔던 강가 입니다.
이게 벌써 제작년이군요.
자꾸 사진 찍는다고 심술도 부리셨지요. 음음...
그 참에 유람선 한번 타고 싶다고 하셔서 배에 모셨습니다.
할머니 그래도 빠져죽는것 보다 낫지요 하고 물어보니 매롱도 하십니다. ㅋㅋㅋ

바람이 차긴 했지만... 그래도 할머니 모시고 가길 잘 했던것 같습니다.
되게 마음에 드셨던지... 다시 가자고 그러셔서.
빠져죽는다. 안하심 그리고 날씨 따듯해지는 봄날 되면 한번 더 가자고 말씀드렸지요.
건강이 악화되셔서 그 다음해에는 그리 할 수 없었습니다만.. 할머니와 한강 나갔던것은 이게 마지막이 되었군요.
새삼 '매 순간이 마지막' 이었다는걸 이때는 몰랐습니다만...
글 쓰려고 디카를 뒤지다 보니 새삼 느끼게 되는군요.
사진 좀 더 많이 찍어 놓을 껄... 하고 말이지요.
머리가 회전이 안되니 사람 노릇 하기가 참...
항상 간절한 소원으로 말씀하셨던게.... "미륵불 곁에 도솔천 내원궁에 가고 싶다"였는데..
잘 가고 계실까요? .... 제가 가본적이 없는 길이니 알 수는 없습니다만...
뭐 해드릴것이라곤 이제 기도 밖엔 없군요.
49재 끝나고도 절에 나가서 기도드려야겠네요. (할머니는 불교.)
없는 엄마 찾아 눈물 짓는 날도 없으며.
바람 피우는 남편도 없고. 말 안듣는 자식도 없고.. 안보러 가는 손자도 없고.
돈없는 설움에 눈치 볼일도 없고, 오래 산다고 괴로워 할 일도 없으며...
나이들어 부러지고 움직이지 못하게 된 다리때문에 고통스러워 할 일 도 없는
그 도솔천 내원궁에 한 구석에 초가 움막 하나 지어서 작은 텃밭에 농사 지으며
떡을 찧고 술을 빚어 손님 오면 잔치하고 넉넉하게 인심 쓰고 사는
그런.. 하여간 그런.. 좋은 곳에 가시길. 기도드려야지요.
다시는 이 오탁악세에 사바세계에 나오지 마시고 거기서 기다리세요.
좋은 곳 가시더라도 제가 누군지 잊어먹지 마시고... ㅋㅋ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할머니 더 잘 못해드려서 미안해요.
할머니. 안녕. ....부디 평안하시길.
P.S 여기 적는다고 전해지지 않겠지만... 찾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고 이 은혜 다 갚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며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님.
부제 : 지난 3개월간 있었던 일 part.2.... 가 되겠군요.

제목 그대로... 저의 집안 제일 큰 어른이시자..
어머니와 함께 어린 시절 저를 길러주신.. 저의 외할머니께서 101세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봄에 어머니께서 손을 다치시는 바람에 마지막 한 해는 집에서 계시질 못했고. 이모댁에서 지내셨지요.
지난 아버지 급환 이후 안정기를 지나 건강이 많이 좋아지신 한달 즈음해서..
갑자기 할머니께서 식사도 못하시고. 그리고 감기와 기침을 다시 앓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후 종종 의식을 잃기 까지 하시고... 결국에는 병원에 입원.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른 어른들은 모두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하지만. 저는, 지난 13년간의 경험이랄까.
아니면 쓸대없는 과신이랄까. 할머니께서도 이번에도 쾌차 하시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2주간 할머니의 병세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었지요.
하지만 마지막 뵈러 갔던 금요일. 잠깐 의식이 돌아오셨습니다.
뭔가 많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만....
노인병원으로 따지면 집중치료실 같은 곳에서 그중에도 격리병동에 계셨던지라.
더 많이 말을 걸고 이야기를 할 상황은 아니었지요. 그리고 계속 석션을 받는 상황인지라.
목도 많이 상하셨고. 눈도 보이지 않으셨고... 하지만 찾아간 우리가족 모두에게 할머니께서는..
손을 잡아 드릴때 마다 산소호흡기를 쓰셔서 발성도 잘 안되는 목소리로
고맙다.
라는 말씀만 연신 하셨지요. 마치 마지막이라도 맞이 하신것 처럼...
저는 그때까지도.... 할머니가 씻은듯이 다 나아서
제가 다시 집으로 모시고 갈거란 생각에 추호도 의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5시쯤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의 급환 덕분에 아침잠에 조금 예민해진지라. 바로 일어났고... 우리 식구 모두 짐작을 했습니다.
차를 몰고 가면서도 눈물 참기 참 어렵더군요. 가족들 모르게 훌쩍거리려니 참...
그리고 할머니께선... 참 평안한 모습으로 가셨습니다.
임종까진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만..... 참으로 편안하게 눈을 감고 계셔서..
잠들어계신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마지막 지켜봐주신 요양사 선생님과 이모도 괴롭지 않게 편하게 가신거라 하더군요.
하지만... 선고 나오고 진단서 끊고... 가족들에게 연락하고.... 예 참 많이 울게 되더군요.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어린시절을 할머니와 함께 보낸지라.
더 정든것이 많아서 그런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달에 한번 정도는 꾸준히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생각도 들고. (좀 들쭉날쭉했지요.)
못해드린것, 해드릴수 없었던것. 그런것들이 생각나고....
창문에 매미 모형 붙여 놓고... 옆에 숨어서 맴맴 소리 내던것도 기억나고....
1912년생... 그야말로 까마득한 100년이지요..
그 모질고 험한 시절 다 겪고 나오신거로 따지면 뭐 한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만..
특히 못배우고 무식하다는걸.... 평생 한으로 생각하셨지요.
다른 오빠들과 언니는 그 시절에 동경제대와 와세다를 보냈다는걸 생각하면 더...
뭐.... 그 오라버니는 공부를 너무 하신탓인지 월북도 하셔서
할머니쪽 집안 원자분해도 시키셨습니다만.. -_-:
그것 빼더라도 해주신 이야기들 되새겨보면... 그리 평탄한 삶도 아니셨어요.
일찍돌아가신 어머니에. 일본에서의 삶에... 일찍 보내버린 아이에.. 바람피우는 영감에...
전쟁으로 끌려나간 친구에, 칼차고 사람 배는 순사에... 6.25에 군정에...
기억과 정신이 온전할 적에는 제가 어렸던 탓에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지는 못했습니다만..
나이가 들어서 곁에 계실적엔 또 치매가 생기셨던지라... -_-:
그래도 그냥 '대한민국 근대사'죠. 뭐...
그런 저런것들 다 생각하니 염할때도... 결국 솟는 눈물을 참을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얼굴도 표정도 그대로인데.... 그냥 벌떡 일어나실것 같은데...
묶는거 싫어하셨으니... 안묶으면 안되냐... 하는 이야기도 해보았습니다만.
그럴수는 없다 하더군요.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습니다.
4남 2녀 였던지라..... 장례식장은 참 떠들석 했습니다.
게다가 사촌들 지인들까지 먼길 찾아와주니...
떠들석하고 잔치같은 분위기 참 좋아하셨는데...
화환도 120개씩이나 들어온지라 치우느라 죽을맛이었다는것 빼곤... OTL
정말 비는 사람이 없는 축제같았습니다. 뭐 저야 그래도
감히 누가 호상 운운이 입에 나올때마다 째려볼정도로 슬펐지만..
요즘은 그리고 야밤에 손님은 잘 안받더군요. 문상객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나. 풍습도 많이 바뀐듯.
거기에 슬픔에 젖어서 이런 저런 일도 잘 못하던 저와 달리..
사촌 형제들은 차분하게 그리고 보기에도 든든하게 일도 잘하고 하는것이 내심 부러웠습니다.
슬프기는 다들 매 한가지 였건만....
그리고 발인날 아침..
저는 몸이 불편하신데도 내리 3일 빈소 지키신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 들어가야 했던지라.
결국 할머니 장지 가시는것은 볼 수 없었습니다.
전에 할머니 모시고 석촌 호수 돌러 갈적에 길고 하얀 리무진을 보셔서...
그런 차를 타고 싶다 하셨던 말씀을 하셨는데...
색은 검정이지만..... 장지까지는 리무진으로 모시더군요.
...... 좀 더 돈 잘 버는 손자 두셨음 리무진으로 모시고 다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못난 생각도 들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듣지 말고 렌트라도 할 걸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것 없이.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싶고...
마지막 가는 길에는 눈물 보이는거 아니라는데 또 한번 곡을 했군요.
그렇게 할머니는 우리 가족의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돌아가시고 나서 하나 둘 느끼는 겁니다만..
나이가 들어 우리가 할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생각을 하지요. 다들.
하지만... 저도 마음속 깊은곳에선 뭔지 모를 부분을 '할머니께 의지'하고 살았던것 같습니다.
치매가 들어도, 못걸어 다녀도, 저 못알아봐도.
그냥 살아 계셔 주시는것만으로도...
마음속 한구석 어딘가에선 안도하며 지내는... 뭐 그런것 말이지요.
세상에 당연한 것이 없는데도.. 영원한 수명따위 없는데도.. 말입니다.
새삼 다시 되새기게 해주시네요.
오래 모셨고 또 함께 지낸 시간이 길었으니..
나름 마음속에선... "해드릴 만큼 해드렸다." 하는 좀 건방진 생각도 한 적이 있습니다만.
맘속을 되짚어보니 어림도 없군요. 뭘 해드렸다는 건지....
뭐 증손자 정도는 제 사촌이 보여드렸으니.. 만족하셨겠지만..
제가 바로 사는것은 마지막까지 못보여 드렸으니... 이 역시 한으로 남는군요.
제 가슴속에...
그래도...

바람한번 쐬시라고 모시고 나갔던 강가 입니다.
이게 벌써 제작년이군요.

그 참에 유람선 한번 타고 싶다고 하셔서 배에 모셨습니다.
할머니 그래도 빠져죽는것 보다 낫지요 하고 물어보니 매롱도 하십니다. ㅋㅋㅋ

바람이 차긴 했지만... 그래도 할머니 모시고 가길 잘 했던것 같습니다.
되게 마음에 드셨던지... 다시 가자고 그러셔서.
빠져죽는다. 안하심 그리고 날씨 따듯해지는 봄날 되면 한번 더 가자고 말씀드렸지요.
건강이 악화되셔서 그 다음해에는 그리 할 수 없었습니다만.. 할머니와 한강 나갔던것은 이게 마지막이 되었군요.
새삼 '매 순간이 마지막' 이었다는걸 이때는 몰랐습니다만...
글 쓰려고 디카를 뒤지다 보니 새삼 느끼게 되는군요.
사진 좀 더 많이 찍어 놓을 껄... 하고 말이지요.
머리가 회전이 안되니 사람 노릇 하기가 참...
항상 간절한 소원으로 말씀하셨던게.... "미륵불 곁에 도솔천 내원궁에 가고 싶다"였는데..
잘 가고 계실까요? .... 제가 가본적이 없는 길이니 알 수는 없습니다만...
뭐 해드릴것이라곤 이제 기도 밖엔 없군요.
49재 끝나고도 절에 나가서 기도드려야겠네요. (할머니는 불교.)
없는 엄마 찾아 눈물 짓는 날도 없으며.
바람 피우는 남편도 없고. 말 안듣는 자식도 없고.. 안보러 가는 손자도 없고.
돈없는 설움에 눈치 볼일도 없고, 오래 산다고 괴로워 할 일도 없으며...
나이들어 부러지고 움직이지 못하게 된 다리때문에 고통스러워 할 일 도 없는
그 도솔천 내원궁에 한 구석에 초가 움막 하나 지어서 작은 텃밭에 농사 지으며
떡을 찧고 술을 빚어 손님 오면 잔치하고 넉넉하게 인심 쓰고 사는
그런.. 하여간 그런.. 좋은 곳에 가시길. 기도드려야지요.
다시는 이 오탁악세에 사바세계에 나오지 마시고 거기서 기다리세요.
좋은 곳 가시더라도 제가 누군지 잊어먹지 마시고... ㅋㅋ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할머니 더 잘 못해드려서 미안해요.
할머니. 안녕. ....부디 평안하시길.
P.S 여기 적는다고 전해지지 않겠지만... 찾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고 이 은혜 다 갚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며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님.
덧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말씀 주셨으니.. 저도 그렇게 마음 다스려야겠지요. 감사합니다. T.T
그러니 마음도 편안하게 가셨을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할머님 부디 평안하시길.
그 고난에서도 다 벗어나셨으니 행복하게 가셨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곁에 계셨으면.. 하는 마음 지금도 없지는 않습니다. T.^: